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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체의 눈, 세계의 재편과 기록을 위한 동맹


문현정 (독립 큐레이터)  
1. 비트콘드리아(Bitchondria) 세계

한수지는 2019년부터 비트콘드리아(Bitchondria) 연작을 통해 다차원의 개념을 탐구하는 세계관을 확장해왔다. 비트콘드리아는 4차원 이상의 디지털 공간에 살고 있는 데이터 소기관으로, 0과1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양자비트,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잇는 초끈이론의 초끈과 에너지 대사를 조절하는 미토콘드리아(mitochondira)의 특성을 결합한 혼종적 생명체이다. 이 가상의 생물은 스크린의 전면에 등장하여 그것이 경유한 가상과 현실의 세계를 서술하고, 그 과정에서 밝혀낸 차원과 시간의 흐름 속 인류의 발전을 회고하는 식으로 스토리라인을 전개해 나간다. 그것은 기록된 역사에 개입하거나 재전유를 꾀하기 위해 세상을 탐험하였고, 환경과 생태를 포괄한 여러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구세주처럼 등장하였다.

그의 세계관은 비트콘드리아라는 소기관이 세상에 대한 절대적인 지식과 정보를 가지게 되었다는 전제 아래 가능해진다. 기술과 매개된 생명체, 그 가운데서도 가장 미시적인 단위의 생물이 세상의 모든 정보를 수용하고 처리한다는 가정은 세계를 구성하는 주체가 된 비인간 객체의 묘사에서 출발한다. 전복적인 시선에서 쓰여진 세계는 인간 중심적으로 기술되어 온 역사의 이면을 복원해 내고 있다. 사회적 사건의 전말은 미시적인 감각에 의해 성과적으로 발견되어 나간다. 이에 따라 비트콘드리아가 말하고자 하는 세상의 이야기는 스크린의 납작한 평면에 안착하며, 지금까지 없었던 제3의 존재자는 그 내부 디지털 공간과 현실의 층위를 복기하기 위한 이야기로 발화된다.

그렇다면 비트콘드리아는 왜 디지털 공간에 존재하는가? 19세기 이후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혁신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범주를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운송 수단에 이어 매스 미디어와 장거리 통신 시스템까지, 디지털 기술은 정보(information)와 데이터(data)를 송신하고 저장하는 여러 수단의 발명을 가속화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수축시켰다.[1] 그 가운데 컴퓨터의 발전은 시간과 공간을 객관화하거나 재현할 수 있는 단위를 제공하여 ‘공간’이라는 개념에 대한 사유를 확장시켰다. 이제 외부 세계를 재현하는 공간의 개념은 영화관과 TV 스크린에서 표상되는 단계를 넘어 컴퓨터 속 디지털 공간에 현현한다. 기술의 발전은 시각적 기호를 통해 구성되는 가상 공간을 넘어 복잡한 정보를 부호화하고 처리하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포함한) 인터페이스로서의 공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작가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이 블랙박스의 내부를 어떠한 방식으로 가시화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세계관을 그려내고 있다.

세계관은 가설연역법을 토대로, 가설의 과학적 이론을 입증하기 위한 기술과학적 연구 자료를 편집하고 재가공하여 하나의 세계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에 따라 비트콘드리아는 크게 네 가지 차원의 ‘경로’를 탐구하며 진화하였다. 여기서 ‘경로'라는 명칭은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적 역사와 더불어 대상이 공간적으로 점유해온 길을 동시에 은유하기 위한 명명으로 활용된다. 이에 시간, 중력, 세포 그리고 데이터에 대한 네 가지 서술은 인류 사회를 표지하고 추적하기 위한 도구로 제공되었다. ‘시간의 경로’는 역사와 사건에 대한 증거를 연대기적으로 명확히 하고 있으며, ‘중력의 경로’는 사물 혹은 생물의 이동과 데이터의 효율적 전송을 가능하게 한다. ‘세포 경로'는 세포 내 신경 물질의 전달 경로를 실시간으로 인지하도록 만들었으며, ‘데이터 경로'는 클라우드 내 데이터를 추적 가능하게 만들었다.

일련의 경로는 인류가 마주하게 될 미래 세계에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하며, 누락된 역사를 추적하고 재배치한다. 역사와 신앙, 데이터 기술의 발전, 생물의 이동과 진화에 대한 연대기는 본래의 궤적을 구체화하는 가운데 다시 쓰여지는 과정을 통해 비인간 존재자의 ‘객체 정치'를 가시화한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었던 ‘경로’를 추적할 수 있게 된 비트콘드리아는, 이제 역사의 주체가 되어 제3자의 입장에서 서술 가능한 인류의 연대기를 좇아나가고 있다. 미시 세계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의 역사와 기술의 발전은 예측 가능한 미래의 모습 중 하나의 단편을 포착해낸다.

2. 객체-지향적 보기
전시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것'은 비-인간의 시선에서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해석이 가능해지는 세상의 체계를 설명한다. 전시 «Eye See the World - Good After눈»은 비트콘드리아를 ‘보기’의 주체로 놓으며, 세계의 ‘비가시적'인 부분을 낱낱이 들춰내고 객체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진화한 눈’이다. 실로 기술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발전해 왔으며, 높아지는 해상도에 따라 다른 존재자의 무수한 가능성을 발견해 내도록 하였다. 보다 작은 대상의 존재론적 가능성은 곧 비트콘드리아라는 가상의 생명체를 조직하는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인간의 시각 체계를 광학 기술의 구조 안에 놓이도록 만든 이러한 발전은 기술로 증강된 제3의 눈을 통해 세상을 감각하도록 만든 동시에 정보 체계와 커뮤니케이션을 변화시키기도 하였다. 보기의 기술적 방법론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미시와 거시의 역사를 재구성해왔으며 정보와 기록의 양상을 재편해왔다. 망원경은 더 먼 곳을 바라보기 위해 - 현미경은 보다 미시적인 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해 고안되었고, 육안으로 보는 것이 불가능했던 세계를 포착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반면 카메라는 시간의 포착과 기록, 보존을 위한 기술로 활용되었다.

기록과 도큐멘테이션을 가능하게 한 카메라는 시각적 논리에 개입하기 위한 기능을 발전시킨다. 확대와 축소, 중단과 분리, 연장과 단축과 같은 편집의 기술은[2] 기록과 재현의 관념적 문제를 파생시키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대상의 재현에서 벗어나게 된 인류는 객관성을 중요시했던 저변의 층위를 거슬러 기록의 형식을 재편하고 다수의 정치적 이미지를 발현해 내기 시작하였다. 이에 더해 21세기를 맞이하며 디지털로 전환된 보기 방법론은 통신과 저장의 비약적 발전을 토대로 정보 통신 구조의 전반을 바꾸어 놓음으로써 감각되지 못하는 상당수의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내었다.

여기서 비인간 존재자인 비트콘드리아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던 미시 세계의 시선을 역으로 이용하여, 기록된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것을 촉구한다. 지금까지 가시화된 기록은 현실을 마치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통해 진실과 권력의 층위를 넘나들었고, 기록된 이미지는 역으로 우리의 역사를 조직하고 있었다. 비트콘드리아는 기록된 모든 형식을 추적할 수 있는 ‘기술로 증강된 눈'을 무기로, 일련의 경로화를 통해 정치적으로 재편된 역사와 중앙화된 데이터를 공용의 자원으로 회귀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된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이 바라본 세계의 경로는 어떠한 방식으로 감각되며, 어떠한 데이터를 가시화하게 되었는가.

3. 증강된 눈과 진화한 종

가장 미시 단위의 생물로 제시되는 비트콘드리아는 기술로 증강된 눈을 통해 인간에게 ‘확장된 보기’의 경험을 제안한다. 발달한 시각 기관이 받아들이는 정보는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것보다 다변화된 차원의 보기를 제공하며, 블랙박스 안에 가려져 있던 디지털 공간 혹은 다중 공간의 비가시적 맹점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 눈의 진화는 ‘합안(Fuse eye)’과 ‘네모난 동공(Square pupils)’, ‘단안운동안구(Monocular Movements Eyes)’의 세 가지 형태로 구체화된다. 시각적 진화의 메커니즘은 곤충과 같은 비인간 존재자의 원시적 눈에 기술적으로 증강된 카메라의 눈을 더하여, 복합적인 차원에서 정보를 포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을 따르고 있다.

수백 개의 낱눈으로 이루어진 복안(複眼)과 외눈인 단안(單眼)을 더한 ‘합안'은 동물의 눈을 통해 구상 가능한 형상(configuration)을 복합적으로 구현해 내기 위한 방법론으로 제시된다. ‘네모난 동공’은 세밀한 깊이를 인식하고 넓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고안되었으며, 개별 안구의 독립된 운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단안운동안구’가 등장하고 있다. 동물 혹은 곤충과 같은 비인간 존재자의 눈과 기술의 결합을 통해 가능해지는 시각 체계는 곧 작품 ‹Good After눈›(2024)에 드러나는 8개의 화면을 통해서 형상화된다. 기술적으로, 그리고 기계적으로 넓혀진 시야는 ‘경로의 가시화’를 위한 본질적 수단이자 환경이 변화하게 된 미래 종에 대한 해석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눈으로 발견할 수 있는 비인간의 시선은, 그 시각 체계를 파악하기 위해서 유사하게 재현된 구조적 이미지를 통해서만 구체화될 수 있다. 이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동일한 이미지를 축소하고, 격자를 활용하여 확대하거나 모자이크로 변환하는 식으로 재현된다. 그러나 동물이나 곤충은 제각기 다른 눈의 구조를 통해 자신의 환경 세계를 파악한다. 비인간 객체의 ‘보기’는 시각 요소만에 의존하지 않으며, 촉각적이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환경 내부의 운동과 형태를 지각해낸다.[3] 그렇기에 한수지의 스크린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왜곡되거나 글리치가 발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이미지가 가시화하고자 하는 것은 궁극적인 정보 수용의 방법론일 것이다. 8개의 스크린이 보여주는 복안 운동은 각기 다른 대상의 시각 체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비인간으로서의 ‘객체 동맹’이 한순간 합일함으로써 가능해지는 정치적 집합체로서의 기록과 무빙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가지 기묘한 서술은 일련의 세계관이 다수 종의 ‘진화'를 경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생물과 기계의 다양성이 임계점을 넘는 순간을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변화된 생태계 가운데 발생할 수밖에 없는 디지털 세계와 실재 세계 사이의 정보 번역과 오역을 대비하기 위한 체계일 것이다. 여기에 한수지는 작품 ‹신종도감›(2024)을 통해 다변화된 생태계의 모습을 제안함으로써 인간과 비인간이 공동으로 고민해야 할 생태의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각각의 종은 앞서 언급했던 네 가지 경로를 토대로 진화한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시공간 이동자'나 ‘시공간지배자'와 같은 종은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기 위해 발달한 형태를 드러내고 있으며, ‘중력 적응 사냥꾼'은 중력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 형태로 생존했다고 서술된다. ‘신호잡식자'나 ‘전자기감지뱀'은 주변 환경의 정보를 체화하기 위해 발달한 신체를 제안하고, ‘데이터 보호 뱀’은 외부로부터 정보의 안전을 유지한다. 시간과 중력, 세포, 데이터의 경로는 각각의 비인간 존재자의 신체를 매개로 재현됨으로써 확장된 탈중앙 공동체에 대한 상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한수지의 세계관은 스크린 속 비트콘드리아의 서술을 넘어 미래 현실에 존재 가능한 객체를 포섭함으로써 다중적 존재자가 발화하게 될 사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나간다. 기술의 진보에 따라 변화하는 환경과 기록의 역사를 복기하고 있는 작품은, 곧 미래의 진화한 생명체가 복원하거나 개입해야만 하는 블랙박스에 대한 서사를 만들어나갈 비인간 동맹을 모색하는 것으로 귀결한다. 보이지 않는 것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다시금 쓰여지는 기록, 공동의 자원으로 회귀한 데이터. 비트콘드리아의 ‘눈’이 매개한 인류의 모습은 임계점 이후 변화하게 될 환경에 대한 경고인 동시에 현 상황을 재인하는 창으로 기능하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1] W.J.T. 미첼, 「시간과 공간」, W.J.T. 미첼, 마크 B.N. 핸슨, 『미디어 비평용어 21』, 정연심 외 (역), 2015, p. 138.
[2]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제2판, 최성만 옮김, 길, 2007, p. 84.
[3] 야콥 폰 윅스킬, 『동물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정지은 역, 2012, p.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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