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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학적 미학: 예술에서 유사–과학의 형식 사용에 관하여
이렇듯 한수지는 자신을 유사–연구자, 또는 이를 표방하는 예술가로 스스로를 호명하며, 작업의 차원에서 ‘가짜’의 개념을 도입하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는데, 이는 작가 스스로가 작업의 영감으로 삼는 가장 기초의 지점, 그것에 관한 내용적 수집은 미디어를 통해 보도된 사실의 표층으로부터 행해지기 때문일 테다.[1] 그렇게 그가 착안한 과학적 현상이란, 애초에 이것을 마찬가지로 동일한 층위에서 실험하거나 검증하기 위한 이유로 호출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해당의 필요는 곧 당대를 지지하는 사유를 규명하기 위한 메타적 접근의 시도로써, 작가 고유의 관점을 창안하는 데에 다른 한편, 제 몫을 한다 하겠다. 특징적인 건, 작가 작업의 개별적 단위, 즉 한수지 스스로가 특정의 타이틀로 묶어내어 구성하는 작품의 시연이 ‘미디어 설치(media installation)’의 형식으로 축조된다는 점으로, 여기서 미디어 설치의 형식은 말 그대로 ‘설치된’ ‘(뉴) 미디어’의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매체들–이를테면, 디자인 삽화나 드로잉과 같은 평면의 이미지나 입체 오브제 및 구조체, 더불어 스크린 투사의 실사 혹은 컴퓨터 그래픽 영상 등의–간 다원적 집체가 단일한 인식의 구성을 향해 조직되었음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한 용어다. 이와 같이 작가가 구사하는 다층 매체 기반의 혼성형 패키지는 개별 작품을 감상의 대상으로 제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향유의 주체들로 하여금 그의 세계관을 점진적으로 수용하도록 하는, 검증 과정을 통한 공감 유도의 공식으로 점철한다. 그처럼 한수지의 작업에서 미디어 설치의 형식은 그 자체로 완결하는 사적 메시지의 제시를 목표하기보다는, 문제 제기에서 출발해, 그에 관한 선행 연구를 검토하고, 뒤이어 해당 연구의 방법론을 설계하며, 연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에서, 최종적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일련의 학술적 논증 체계를 표상한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기존 시각 예술의 범주에서 상정하는 감상자로서의 관객으로부터 단순한 수신자의 위치를 넘어 제시된 단계를 따라가는 것으로 연구의 의미를 이해하고, 가치를 판단하며, 지식 생산에 참여하는, 적극적인 독자의 입장으로 이들을 변화시킨다.
이처럼 한수지 작업의 체계는 예술과 기술(technology)의 상호 교차성을 창출하는 가운데,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가 주창한 바 있는 시뮬라크르(simulacre) 맥락에서의 ‘실체’, 그 동시대적 전략화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2] 특히나 이번 전시 《생생화화 生生化化: 사라지는 감각들》(아트센터 화이트블럭, 2025–2026)에서 선보이는 그의 신작 패키지는 이상으로 살핀 작가의 유사–과학적 방법론을 기술적 층위에서 한층 정교화하는 동시에, 작가가 수행한 연구의 주장과 분석의 형식적 신빙성을 전유하는 새로운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인상 깊다. 총체의 연쇄에서 사례 연구의 시각적 결과물의 위상을 도맡는 〈접힌 피부, 이중 심박〉(2025)과 〈펼쳐진 일곱 층위〉(2025)와 같은 작품은 바로 전자의 경우를, 세계관의 전반적인 서사를 기술(writing)하는 것으로 본 구성에서 초록(abstract)의 기능을 행하는 〈제논 피부–개굴 개굴〉(2025)은 현실과 초현실의 가로지름–제논 피부에 관한 생물학적 논점과 금강산 개구리 바위에 얽힌 설화의 인용–과 공적 개념의 사적 서술–관련 개념에 관해 마치 선행의 세대가 후행의 세대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식의 내레이션 문체 구사–로부터 후자의 경우를 시사한다. 공간으로의 진입을 위한 입구를 이루는 작품 〈생성막〉(2025)으로부터 영상 작품 감상을 위한 의자의 형태로 설치된 〈외피 스캔 데이터〉(2025)는 실사용, 즉 일상의 틀로 객관적 데이터의 취급을 시행하며 앞선 두 층위를 가교하는 구조적 완충의 지대를 전시에서 형성하는데, 그렇게 과학적 연구와 미디어 설치에 바탕하는 한수지의 작업은 하나의 논증된 시연이자 시연된 논증으로서 작동한다. 관객이자 독자는 전시장 내부에서 상이한 매체의 범주들을 마주하면서, 작가가 제시하는 입증의 경로를 통해 문제의 제기에서 결론의 도출에 이르는 미적 실천의 전 과정을 감각과 사유의 방식으로 체감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그와 같은 지난한 실험의 종착은 작가가 자처하는 유사–과학적 태도가 피상적인 모방의 차원을 넘어 안팎에서 독자적인 인식의 방법론으로 (융복합적) 예술이 기동할 수 있음을 선언함에 다름 없다. 이로써 한수지의 작업은 더는 과학을 흉내 내는 유사–과학의 예술에 머무르지 않고, 예술과 과학의 권위를 재배치하며 비판적으로 그 관계를 병치하는, 바야흐로 ‘파라–과학적 미학(para–scientific aesthetics)’의 영역으로 이행한다. 이러한 태도는 특정한 제도의 논리를 유예함으로써, 지각의 생성과 유통을 실행하는 당대의 조건, 그 자체를 미학의 논의로 전환한다는 데에서 분명 유효해 뵌다.
[1] 한수지, 장진택과의 인터뷰,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2025년 9월 18일.
[2] 보드리야르는 그의 저서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Simulacres et Simulation)』(1981)에서, 원본 없이도 존재할 수 있고, 되려 원본보다 진짜처럼 감각되는 모방된 가짜 이미지를 시뮬라크르로, 그러한 시뮬라크르가 대체하고 지배하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사라진 현상을 시뮬라시옹으로 정의하면서, 그와 같은 시뮬라시옹이 ‘참’과 ‘거짓’ 또한 ‘실재’와 ‘상상세계’ 사이의 다름 자체를 위협하고, 나아가 ‘진짜’ 징후들을 생산할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크르의 자전」, 『시뮬라시옹』, 하태완 (역), 서울: 민음사, 2001, pp. 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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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학적 미학: 예술에서 유사–과학의 형식 사용에 관하여
장진택(동시대 예술 연구자)
자유로운 주체로서 예술가는 스스로가 곧 자신으로 선재할 개인이기에, 창작을 향한 그의 선택 역시도 사적 주체의 독립적인 판단에 기인함은 당연한 권리이겠다. 다만 주체성의 발현이라는 이러한 측면이 또한 진전해 온, 이른바 전문성의 척도를 감안할 때, 예술 창작은 자의에 의거한 개인적 판단의 층위에 한정하지 않고, 그 향유자와의 관계 가운데서 공적으로 설득 가능한 전제로서의 명분을 필연적으로 요청받는다. 그런 문맥에서 예술가의 지위는 재설정할 수 있는 무엇으로서–이를테면, 미학적 연구 주체로서의 예술가와 같이–형성될 수 있을 것이고. 그로부터 예술은 자기 지시성을 초월한 학제 간 사유의 지평으로 확장하며, 과학이나 사회, 정치와 경제 등, 상호 이질한 인식 영역 사이의 문화적 횡단을 통해 감각과 이성, 주관과 객관, 담론과 형식의 관계를 직조하는 연구적 실천으로서의 당위를 획득하게 된다. 이때에, 연구적 실천의 미적 의미는 무엇이 되는가? 예술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두 가지의 갈래를 두고 고민할 수밖에는 없겠다. 그 하나가 오롯이 개인의 주체로서 자신의 관심과 취향을 정교화하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곧 공적 책임의 그것이 될 테다. 결국은 객관적인 합의의 국면에서 예술의 자리를 어디에 마련할 것인지가 모든 예술의 주체들에게 있어 크고 무거운 필수 해결의 과제로 남겨진다. 소위 ‘가속주의적 다양성(accelerated diversity)’의 가치란 어떤 합의를 전제로 하는 동시대 규범 구축의 가능성을 훨씬 더 복잡한 것으로 이끈다. 그처럼 당장엔 표면적 수준에 그칠지언정, 매체화의 과정을 통한 가치 생산 방식의 다원화는 예술 그리고 이를 향한 인식을 재귀적인(혹은 일면 폐쇄적인) 장으로부터 탈주케 한다. 이로부터 예술은 설명 가능한 형식을 취하면서도, 동시에 그 주장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역설적 태도로 귀결한다. 다시 말해, 예술은 과학의 문법을 차용하되 과학인 것은 아니며, 연구의 구조를 갖추되 일반적인 연구의 목적으로 환원하지는 않을, 양가적 스펙트럼으로 유영한다. 자율 생성형 환경 속에서 다시금 예술은 창작 주체의 의지와 의도의 경계를 흐려낼 것을 택하면서, 모든 권리의 중심에서 그 향유의 주체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토록 한 것이다. 매체를 향한 논의의 전개는 그곳에서, 오늘날 본격화한다. 이렇듯 한수지는 자신을 유사–연구자, 또는 이를 표방하는 예술가로 스스로를 호명하며, 작업의 차원에서 ‘가짜’의 개념을 도입하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는데, 이는 작가 스스로가 작업의 영감으로 삼는 가장 기초의 지점, 그것에 관한 내용적 수집은 미디어를 통해 보도된 사실의 표층으로부터 행해지기 때문일 테다.[1] 그렇게 그가 착안한 과학적 현상이란, 애초에 이것을 마찬가지로 동일한 층위에서 실험하거나 검증하기 위한 이유로 호출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해당의 필요는 곧 당대를 지지하는 사유를 규명하기 위한 메타적 접근의 시도로써, 작가 고유의 관점을 창안하는 데에 다른 한편, 제 몫을 한다 하겠다. 특징적인 건, 작가 작업의 개별적 단위, 즉 한수지 스스로가 특정의 타이틀로 묶어내어 구성하는 작품의 시연이 ‘미디어 설치(media installation)’의 형식으로 축조된다는 점으로, 여기서 미디어 설치의 형식은 말 그대로 ‘설치된’ ‘(뉴) 미디어’의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매체들–이를테면, 디자인 삽화나 드로잉과 같은 평면의 이미지나 입체 오브제 및 구조체, 더불어 스크린 투사의 실사 혹은 컴퓨터 그래픽 영상 등의–간 다원적 집체가 단일한 인식의 구성을 향해 조직되었음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한 용어다. 이와 같이 작가가 구사하는 다층 매체 기반의 혼성형 패키지는 개별 작품을 감상의 대상으로 제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향유의 주체들로 하여금 그의 세계관을 점진적으로 수용하도록 하는, 검증 과정을 통한 공감 유도의 공식으로 점철한다. 그처럼 한수지의 작업에서 미디어 설치의 형식은 그 자체로 완결하는 사적 메시지의 제시를 목표하기보다는, 문제 제기에서 출발해, 그에 관한 선행 연구를 검토하고, 뒤이어 해당 연구의 방법론을 설계하며, 연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에서, 최종적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일련의 학술적 논증 체계를 표상한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기존 시각 예술의 범주에서 상정하는 감상자로서의 관객으로부터 단순한 수신자의 위치를 넘어 제시된 단계를 따라가는 것으로 연구의 의미를 이해하고, 가치를 판단하며, 지식 생산에 참여하는, 적극적인 독자의 입장으로 이들을 변화시킨다.
이처럼 한수지 작업의 체계는 예술과 기술(technology)의 상호 교차성을 창출하는 가운데,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가 주창한 바 있는 시뮬라크르(simulacre) 맥락에서의 ‘실체’, 그 동시대적 전략화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2] 특히나 이번 전시 《생생화화 生生化化: 사라지는 감각들》(아트센터 화이트블럭, 2025–2026)에서 선보이는 그의 신작 패키지는 이상으로 살핀 작가의 유사–과학적 방법론을 기술적 층위에서 한층 정교화하는 동시에, 작가가 수행한 연구의 주장과 분석의 형식적 신빙성을 전유하는 새로운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인상 깊다. 총체의 연쇄에서 사례 연구의 시각적 결과물의 위상을 도맡는 〈접힌 피부, 이중 심박〉(2025)과 〈펼쳐진 일곱 층위〉(2025)와 같은 작품은 바로 전자의 경우를, 세계관의 전반적인 서사를 기술(writing)하는 것으로 본 구성에서 초록(abstract)의 기능을 행하는 〈제논 피부–개굴 개굴〉(2025)은 현실과 초현실의 가로지름–제논 피부에 관한 생물학적 논점과 금강산 개구리 바위에 얽힌 설화의 인용–과 공적 개념의 사적 서술–관련 개념에 관해 마치 선행의 세대가 후행의 세대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식의 내레이션 문체 구사–로부터 후자의 경우를 시사한다. 공간으로의 진입을 위한 입구를 이루는 작품 〈생성막〉(2025)으로부터 영상 작품 감상을 위한 의자의 형태로 설치된 〈외피 스캔 데이터〉(2025)는 실사용, 즉 일상의 틀로 객관적 데이터의 취급을 시행하며 앞선 두 층위를 가교하는 구조적 완충의 지대를 전시에서 형성하는데, 그렇게 과학적 연구와 미디어 설치에 바탕하는 한수지의 작업은 하나의 논증된 시연이자 시연된 논증으로서 작동한다. 관객이자 독자는 전시장 내부에서 상이한 매체의 범주들을 마주하면서, 작가가 제시하는 입증의 경로를 통해 문제의 제기에서 결론의 도출에 이르는 미적 실천의 전 과정을 감각과 사유의 방식으로 체감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그와 같은 지난한 실험의 종착은 작가가 자처하는 유사–과학적 태도가 피상적인 모방의 차원을 넘어 안팎에서 독자적인 인식의 방법론으로 (융복합적) 예술이 기동할 수 있음을 선언함에 다름 없다. 이로써 한수지의 작업은 더는 과학을 흉내 내는 유사–과학의 예술에 머무르지 않고, 예술과 과학의 권위를 재배치하며 비판적으로 그 관계를 병치하는, 바야흐로 ‘파라–과학적 미학(para–scientific aesthetics)’의 영역으로 이행한다. 이러한 태도는 특정한 제도의 논리를 유예함으로써, 지각의 생성과 유통을 실행하는 당대의 조건, 그 자체를 미학의 논의로 전환한다는 데에서 분명 유효해 뵌다.
[1] 한수지, 장진택과의 인터뷰,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2025년 9월 18일.
[2] 보드리야르는 그의 저서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Simulacres et Simulation)』(1981)에서, 원본 없이도 존재할 수 있고, 되려 원본보다 진짜처럼 감각되는 모방된 가짜 이미지를 시뮬라크르로, 그러한 시뮬라크르가 대체하고 지배하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사라진 현상을 시뮬라시옹으로 정의하면서, 그와 같은 시뮬라시옹이 ‘참’과 ‘거짓’ 또한 ‘실재’와 ‘상상세계’ 사이의 다름 자체를 위협하고, 나아가 ‘진짜’ 징후들을 생산할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크르의 자전」, 『시뮬라시옹』, 하태완 (역), 서울: 민음사, 2001, pp. 9–90.